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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Spring Vol. 99 HAbITAT 20 Culture Together 21 20 책 <달의 궁전>에 담긴 ‘사랑’에 대하여 보금자리를 잃은 사람들을 위한 꿈, 달 의 궁 전 1 년 가량 노량진 고시원에서 자취를 한 경험이 있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결코 유쾌한 이 야기가 될 수 없기에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싶지 않다. 확실한 것은 고시원이란 곳이 사람 이 살기에 절대 쾌적하다고 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당시의 나는 언제나 배가 고팠 고, 집에서 보내주는 생활비는 항상 부족했다. 각박했던 고시촌의 생활은 무척이나 괴로 운 일이었다. 그 당시의 내 생활이 바로 위에 언급한 <달의 궁전>의 내용과 같았다.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은 나의 노량진 고시원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이야 기가 담긴 공간이다. 주인공 포그는 괴짜이지만 다정한 ‘빅터 외삼촌’ 아래서 자랐다. 대 학생이 된 후 그는 자취를 시작한다. 빅터 외삼촌은 자취방으로 1 천 권이 넘는 책을 보낸 다. 그 책들은 포그를 향한 외삼촌의 애정이었다. 책을 받지 않으려던 포그는 결국 외삼 “인간이 달을 처음 걸었던 것은 그해 여름이었다. 그때 나는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젊은이였지만, 어쩐지 이제부터는 미래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위태위태한 삶을 살고 있었다.” …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 중에서 촌의 마음을 받아들이지만, 읽지는 않고 쌓아 텅 빈 집 안 을 채우는 가구로 만들어 낸다. 그런데 그는 차츰 책들로 이 뤄진 가구가 가득 차 있는 허름한 자취방에 매료된다. 자취 방 창으로 얼핏 보이는 중화요리 집 간판, ‘달의 궁전( Moon Palace )’이라는 글자가 적힌 분홍색과 파란색의 선명한 네온 사인 불빛에 그는 일종의 계시(?)까지 느낀다. 외삼촌이 클 라리넷 연주자로 속해있는 밴드인 문멘( moon men )이 연상 됐기 때문이다. 그는 자취방에서 그렇게 삼촌을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얼마 후 외삼촌의 부고소식이 들려온다. 포그는 외삼촌에 대한 애도차원으로 1 천 권이 넘는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어 간다. 그러나 슬픔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재정이었다. 읽은 책들을 헌 책방에 팔아 돈을 마련해 생활하면서 책으로 만 들었던 그의 가구는 점점 사라져간다. 포그의 방은 텅 빈 공 간이 되고, 결국 그는 자신의 보금자리에서 쫓겨나게 된다. 포그가 꿈꾸는 ‘달’이라는 공간은 재정적 가난으로 인해 좌 절된다. <달의 궁전> 중 “태양은 과거이고, 지구는 현재이 고, 달은 미래다.” 라는 말이 나온다. 부모님 없이 자란 포그 가 꿈꾸었던 미래, 돌아갈 보금자리는 결국 가족이 기다리 는 집이었다. 책으로 만든 기묘한 가구가 가득 찬 좁고 허름 한 그의 자취방은 그가 유일한 가족이었던 삼촌을 그릴수 있었던 곳이었다. 하지만 그런 소소한 안식의 공간마저도 가난으로 인해 빼앗 기는 포그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그리움은 돌아갈 곳, 즉 집이 있기에 생겨난다. 하지만 가난은 그런 그리움마저도 뺏어간다. 하지만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포그의 불쌍한 인생은 다행히 절망의 나락으로 추락하지 않는다. 이유는 심플하다. 포그는 독자에게 “사랑이야말로 추락을 멈출 수 있는, 중력의 법칙을 부정할 만큼 강력한 단 한가지의 것이 다.” 라고 말한다. 누군가 추락하고 있을 때, 그에게 필요한 것은 작은 사랑이다. 빅터 외삼촌을 잃고 무기력해진 포그 를 지탱해준 것은 외삼촌이 남긴 책 더미였고, 그 책들이 모 두 사라지고 난 후 포그는 여러 사람의 도움을 통해 회복된 다. 이러한 과정에서 포그를 지탱해준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 다. 여러 사람이 그를 도와주지만 그중 가장 인상 깊은 인물 을 꼽자면 ‘에핑 영감’을 들 수 있다. 그는 재산이 많은 고집 불통이고, 장님인 노인이다. 포그는 에핑 영감의 집에서 숙 식을 해결하며 그의 말벗이 되는 일을 한다. 포그는 수수께 끼 같으면서도 매혹적인 노인의 삶을 들어주며, 노쇠한 그의 생을 정리하는 것을 도와준다. 이후 이 소설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 나온다. 포그는 에 핑 영감의 휠체어를 끌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 즉 이전의 포그와 같이 가난으로 인해 보금자리를 빼앗긴 사람들을 찾아간다. 그 후 에핑 영감은 그들에게 평생 모은 재산을 기 부하고 생을 정리한다. 그리고 포그에게도 얼마의 재산을 남겨준다. 나눔은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는 데에서 시작된 다. 포그는 살 곳을 잃고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렇기에 타인 의 아픔을 더욱 공감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누구나 마 음 한켠에 아픔을 묻고 살아간다. 하지만 거기에서 멈추어 선 안 된다. 그 아픔을 딛고 일어나 ‘다정함’이라는 힘을 손에 넣고, 그 다정함을 사용할 때 비로소 우리는 그 아픔을 온전히 달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보금자리를 잃고 추락해 가는 사람들이 많다. 조금만 눈을 돌려 그들을 지탱해주는 것은 어떨까? <달의 궁전>은 분명 매력적인 이야기이다. 그 매력이 짧고 서툰 나의 글 안에 얼마나 담아졌는지 모르겠다. 언급하지 않은 이야기가 많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야기, 가족의 비 밀 같은 것들은 이후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을 위해 아껴두려 한다. 책을 읽기에 좋은 봄날이다. 유쾌한 친구 포그의 매력 적인 이야기를 들으며, 잠시 잊고 있었던 돌아갈 곳의 소중 함을 되새겨보아도 좋을 것이다. 글・사진 | 재능기부자 이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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