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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룡 김대락 김동삼 윤세복등과 이주 교민의 정착을 협의하고 황지지개척과 청년교육에 활약하시었으며 1914년 만주 영춘현에서 황의영과 영춘학교를 설립한후 마록구에서 다시 4년 협창학교를 창립하고 인근 청년들에게 신구학문교육에 전념하면서 한족회의 연락책임을 맡고 활약하셨고 1919년 3월 국내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만주에서 이에 호응하여 군중동원 태극기를 만들어 독립만세운동에 활동하시다 신병으로 이국땅에서 향년 56세로 서거하시었다. 배 진성이씨와의 사이에에 홍직 경직 형제가 있어 서간도 유하현 삼원보형가 둔후곡에 자좌로 안장하였으나 홍직이 종숙에게 출옥하고 경경직이 대를 이은 독립운동으로 내래 고국으로 봉환치 못하다가 효손 중환이 본향에 설단 발향키에 이르렀음 정부에서는 1983년 8월 31일 대통령표창을 추서하니 이 거룩하신 애국충절의 정신을 후세에 기리 보전하기위하여 그 공적을 추려 군민의 뜻을 모아 이 비를 세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