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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안 유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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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 중심에 우뚝솟은 계룡산은 예로부터 신라5악 조선3악중 하나로 천하의 명산이라. 지제로 보아 지리산을 시작으로 700리를 북상하여 민족의 영봉 산태극을 이루었고 전북 장수 발원하여 역류 400리 휘돌아 수태극을 이룬 대길지라. 조선조 태조2년 정월, 태조는 군신을 거느리고 양주 회암사에서 왕사 무악과 함께 동년 2월 계룡산아래 도착하여 신하들에게 조정과 시정의 형세를 살피게 하였다. 태조는 신도중앙의 높은 언덕에 올라 주위형세를 친히 살피고 흡족한 마음으로 환궁하여 한양도읍경영을 중지케하고 동년 3월에 신도경내에 속할 주 현 부곡 향을 81개소를 정하고 천도공사진행중 태조 2년 12월에 이르러 신도경영의 역사가 정파된다. 그 이유는 경기도 조관찰사 하륜이 도읍은 나라의 중앙에 있어야 하나 계룡산은 남방에 치우쳐 지리상의 결함과 중원 송대호순신의 풍수지리설에 반한다는 내용의 글을 태조께 올린 때문이다. 그후 이곳을 신도안이라 부르고 대궐터 종로터란 지명과 지방유형문화재 주초석이 다수 산재하여 현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