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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女(해녀)항일운동의 비밀 본거지 康寬順(강관순)의 生家(생가) 이 연평리 929번지는 항일운동의 본거지로 강관순의 부인 김유생(金有生)의 뒷바라지로 도내 거물 투사들이 드나들었던 곳이다. 최고 지휘자는 신재홍(申才弘)이었다. 우도의 해녀 대표는 강기평(康基平), 강순인(姜順仁), 강창순(康昌順) 여사 등에 의해 1931년 1월 세화장터의 항쟁에 참가했다. 그 후 전남경찰에 의해 우도에서 신재홍(申才弘) 등을 구인하려 하니 5백여 해녀가 몰려가 저지하자 세화주재소 주임 야마다치로(山田次郎)가 발포해 체포해 갔다. 이 무렵 도내 항일인사 1백명을, 또 구좌면 관내 우도인(牛島人) 13명, 세화인(細花人) 8명, 하도인(下道人) 9명, 종달인(終達人) 8명을 구속했다. 1933년 대구복심법원에서 신재홍(34) 5년, 강관순(26)과 김성오(24)는 2년 반 옥고를 치렀다. 강(康)은 제주농업학교를, 신(申)은 서울의 고보(高普)를, 김(金)은 만주의 동흥(東興)중학교를 졸업한 당대의 선각자였다. 더구나 강(康)은 강철(康哲)이란 필명으로 옥중에서 '海女의 노래'를 작사하여 저항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