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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청주한씨이시며 부 한균도공과 모 박균배씨의 사이에 2남으로 북제주군 구좌읍 종달리 909번지에서 서기 1912년 11월 19일 출생하시고 배위는 광산김씨이시다. 유족으로는 형 기택 질 석중 종손 창식 종손부 김영숙이며 종증손은 승엽 승훈 종증손녀는 승희 지윤 정희가 있다. 공은 1931년 1월 2일 농민조합을 설립하고 농민들의 권익보호와 빈족의식 고취에 주력하였으며 1932년 제구도 해녀사건에 연루되어 구속수감되였다. 공은 이에 굴하지 않고 조선공산당 야채이카의 책임자인 중재송과 채재오 고사만등과 함께 김기생의 집에서 농민조합설립총회를 개최하였으며 농민대중의 권익에 배치대는 면행정에 반대표어를 발표하였으며 이 항일 항거로 인하여 일경에 재차 구속되어 1933년 6월 5일 대국복심법원에서 보안법위반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1년 9월의 옥고를 치렀다. 이에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 8월 15일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고 조국의 영일에 지표로 삼고자 이 비를 세웁니다. 공은 우측에 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