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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태리 지사는 1912년 9월 24일 북제주군 한림읍 귀덕리에서 부 고창주와 모 김여해의 4남2녀 중 4남으로 태어났고 1931년 3월 6일 제주농업학교가 김원요를 퇴학 양두옥 신창진을 유급시키자 김원요는 퇴학처분 이유를 일본인 담임교사에게 따지다가 일본경찰에 구속되고 9일 이에 분개한 고태리 지사 외 여섯분은 지사를 선두로 일제의 식민지 교육을 철폐해야겠다고 일본군 육군소위 출신인 모리다(森田) 등 일본인 교사들에게 실력으로 항쟁하니 뒤이어 전교생이 궐기했으며 일본경찰이 출동하여 고태리 지사를 비롯한 아홉분을 체포하여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 검사분국으로 송치 1931년 8월 19일 고태리 지사에게는 징역 1년 2월이 언도되고 대구복심법원에 항소 1932년 3월 1일 징역 1년 2월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1년간의 옥고를 치른 후 석방되었으나 일본경찰의 혹독한 고문 후유증으로 의식 불명인 체 1개월 후인 1932년 4월 9일 약관 20세의 나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