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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장용진(張瑢珍) 독립항쟁기 장용진 지사는 1910년 5월 27일 한림읍 협재리에서 부 장보익, 모 김창숙의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17세에 구우공립보통학교 제 4학년을 졸업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경도시 날염공장에 취직중, 1931년 9월 30일 노동쟁의에 참가하면서 더욱 항일 독립사상이 함양되어 동년 11월 20일 귀향하여 지사의 집에 향진복습소를 개설, 마을 아동들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주다 검거되어, 1932년 5월 9일 광주지방법원 제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월에 집행유예 2년간의 언도를 받았고, 1933년 1월 중순경 홍경옥, 강공흡, 장병윤 등과 같이 항일독립운동을 목적으로 독서회를 조직하여 각자의 독립항쟁의식을 높이면서 계속 항일운동을 하여 오다가, 1934년 7월 하순 홍경옥, 강공흡과 같이 무명의 비밀결사를 조직 재정부를 맡아 조직 확대를 위하여 동지획득과 자금 조달에 힘쓰다가 1934년 10월 일경에 피체되어, 1937년 4월 12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소위 치안 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고, 해방 후 교편을 잡다가 1983년 7월 3일 타계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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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홍경옥(洪卿玉) 독립항쟁기 홍경옥 지사는 1912년 8월 26일 한림읍 협재리에서 부 홍영종, 모 윤계중의 장남으로 태어나시어 13세인 1924년 구우공립보통학교(현 한림초등학교)에 입학하여 1928년 동교를 졸업하였으며 동교 재학 1926년 협재리 「소년회」에 가입하여「어린이」라는 월간지를 탐독하면서 민족의식이 싹트게 되었고, 1928년 4월부터 1929년까지 약 1년간 부산상업학교에서 공부하다 귀향하여 1930년 3월 용수리 개량서당 교사로 취직하여 12월까지 근무하면서 진보적 사상을 가진 윤한진과 만나면서 항일사상 이름 아래 1931년 3월 지사 및 장동윤, 강동흡 등과 독서회를 조직하였고, 1932년 5월 마을 아동들을 모아 글과 민족의식을 깨우치다 보안법 위반으로 피체되어 옥살이 하다 출옥한 장용진의 환영회를 개최하며 위로함과 동시에 동지들의 투쟁심을 격발시켰고, 그후 농민 대중에게 부담을 많이 주는 공립보통학교 이전에 반대하는 등 지속적으로 민족의식을 일깨우며 동지획득에 힘쓰다 1934년 10월 일경에 피체되어 1937년 4월 12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고 1944년 11월 15일 타계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