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page


54page

애국지사 박주석(朴周錫) 독립항쟁기 박주석 지사는 1864년 2월 17일 진도군 동면 상리에서 부 박경림, 모 이소사 사이에 3남으로 태어나 일찍 제주에 건너와 선도교 교주로 금악리에 본적을 두고 거주하면서 교리를 전도하다 서귀포시 하원동 소내 법정사 주지 김연일의 반일사상에 고취되어 항쟁거사를 계획하여 지사는 부대장을 맡고 다른 승려, 불교신자, 선도교도, 농민 등 33인의 군부서직을 담당하여 각 면 이장에게 격문을 배포하여 1918년 10월 5일 의병 400여명을 동원 중문주재소를 습격 방화하고 일본 순사들과 일본인을 포박, 구타하는 등 중문에서 2일간에 걸쳐 항일항쟁을 벌이다 일경에 피체되어 66인이 목포로 이송되어, 1919년 2월 4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소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7년형을 받고 광주감옥 목포분감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고문과 옥고의 후유증으로 시달리다 1921년 7월 24일 옥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54page

애국지사 강봉환(姜奉煥) 독립항쟁기 강봉환 지사는 1867년 9월 8일 북제주군 한림읍 금악리에서 부 강원선, 모 문찬유의 4남 중 3남으로 태어나 농업에 종사하면서 반일 사상이 높았던 분이었는데 서귀포서 하원동 소내 법정사 주지 김연일의 반일사상에 고취되어 당시 51세이던 지사를 포함한 승려, 불교신자, 선도교도, 농민 등 33인의 군부서직을 담당하여 각 면 이장에게 격문을 배포하여 1918년 10월 5일 의병 400여명을 동원 중문주재소를 습격 방화하고 일본 순사들과 일본인을 포박, 구타하는 등 2일간에 걸쳐 항일항쟁을 벌이다 일경에 피체되어 66인이 목포로 이송되어, 1919년 2월 4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소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받고 광주감옥 목포분감에서 옥고를 치르고 귀향하였으나 고문과 옥고의 후유증으로 시달리다 1944년 4월 21일 영면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