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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치와 민욕의 통한을 안고 조국독립을 쟁취하심에 정성과 신명을 다바친 젊은 충혼이 이곳에 잠들고 계시다. 공은 서기 1902년 임인 9월 19일 한림읍 옹포리에서 출생하시고 휘는 덕홍이신바 계는 남평문씨 시조 무성공 휘 다성의 29세손이시며 입도중조 두수파 휘 신동의 15세손으로 조는 통정대부 휘 기백이요 고 휘 보룡의 서자시다. 공은 일찍이 애국애족의 기개가 남달리 투철하여 일제의 국권 침탈에 항거하고 조국의 자주독립을 목적으로 비밀결사를 모의하다가 일경에 피체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은 바 있으며 그후 일경의 감시에 쫏겨 불편한 생활을 계속하다가 1936년 청운의 뜻을 품고 외항선원이 되어 해외사조에 접하여 일본 중국등지를 왕래하면서 조국의 독립심은 더욱 확고해졌고 적개심이 의식화되어 1940년 기항지인 홍콩(홍항)에서 탈출 은신생활을 하시다가 1941년 2월 중국 중경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찾아가서 광복군에 투신 복무 중 동년 9월 광서성 계림작전에 참가하여 왜군 1개 사단을 괴멸하는 전공을 세웠으며 그후 임시정부 내무부 경위대를 거쳐 재무부 총무과에 배속 활동하시었고 1944년 한국독립당원이 되어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피선 의정활동을 하시던 중 1945년 봄 비밀특하원으로 국내에 잠입 왜군의 동향 정탐 등 사명을 수행하시다가 동년 8월 부산에서 왜경에게 재체포되었다가 조국광복과 왜제의 패망으로 출옥하였으나 오랜 이국생활과 악전고투에서 얻은 신병으로 1949년 5월 12일 독립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