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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열사 조봉호 지사님은 부친 한양조씨 만형과 모친 경주김씨 진실 사이에 장남으로 1883년 5월 12일 한림읍 귀덕리에서 출생하였으며 1906년 남원조씨 성벽과 결혼하였다. 공은 일찍이 경신학교에서 수학하면서 기독교에 귀의하여 1919년 5월 만세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제주에서도 이에 호응하여 만세시위를 펼 것을 동료 기독교인들과 협의하던 중 서울에서 밀파된 독립희생회 연락원 김창규와 접선하게 되었다. 이에 평소 뜻을 나누던 동지인 김창국 최정식 김창언 등을 소개하고 이들과 함께 독립희생회 제주도 지방조직을 결성하였다. 이들은 회원1인당 2원씩 독립군자금 헌납을 결심하고 최정식의 집에서 임시정부헌장과 해외통신문 등을 등사하여 전 도내에 배포하며 군자금 수합활동을 폈다. 그러나 1919년 7월에 이 사실이 일경에 노출되어 그와 최정식 김창국 문창래 이도종 김창언 등 관련자 60여명이 피체되었다. 그는 사건의 중대성과 동지들의 희생을 최소한으로 막기 위하여 스스로 제주도 내의 군자금 모집 총책임자라고 자처하였다. 이에 따라 그는 동년 11월 12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1년형을 확정.언도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가혹한 고문의 여독으로 1920년 4월 28일 38세의 일기로 옥중 순국하였고 지사의 유해마저 유족에게 인도를 거부하였다. 정부에서는 그 공훈을 기리어 1977년에 건국훈장을 추서하였고, 이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공의 슬하에 장남 노득 차남 피득을 두었으며 손 태신 증손 재혁 은혁 현손 현범 현진이다. 지사님의 뜻을 기리고 우리들의 역사의식을 고취시키는 교육의 장으로 삼고자하며 이에 공의 명복을 빌며 이 비를 세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