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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호지사는 1919년 5월 만세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제주도에서도 이에 호응하여 만세시위를 펼 것을 동료 기독교인들과 협의하던 중, 서울에서 밀파된 독립희생회 연락원 김창규와 접선하게 되었다. 이에 평소 뜻을 나누던 동지인 김창국·최정식·김창언 등을 소개하고 이들과 함께 독립회생회 제주도지방조직을 결성하였다. 이들은 회원 1인당 2원씩 독립군자금 헌납을 결심하고 최정식의 집에서 임시정부헌장과 해외통신문 등을 등사하여 전 도내에 배포하며 군자금 수합활동을 폈다. 그러나 1919년 7월에 이 사실이 일경에 노출당하여 그와 최정식·김창국·문창래·이도종·김창언 등 관련자 60여명이 피체당하였다. 그는 사건의 중대성과 동지들의 희생을 최소한으로 막기 위하여 스스로 제주도 내의 군자금모집 총책임자라고 자처하였다. 이에 따라 그는 동년 11월 12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확정·언도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가혹한 고문의 여독으로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