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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륜 생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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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륜 생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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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조천읍 와흘리 산14-3 이기풍선교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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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풍 목사와 애국지사 이기풍 선생이 동일인으로 알고 있었는데, 탄생일 등이 다르다. 아무래도 동명이인인것 같다. 황해도 벽성(碧城) 사람이다. 1919년 3월 10일 진학철(陳學哲) 등과 함께, 사리원(沙里院) 장날을 이용하여 서종면 단장리(西鍾面丹墻里)에서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는 1916년 이래 서울과 평양간의 독립운동·지하조직 연락책으로서 활약하며, 벽성군에서 독립운동자금을 조달하여 왔다. 1919년 3월 1일 이래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시위가 전개되자, 사인면 만화리(舍人面萬和里) 교회의 신도인 박기영(朴基永)과 연락하며,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제반준비를 마쳐놓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3월 10일 오전 9시, 그는 서종면 단장리에서 그곳 기독교인과 인근의 사리원장에 가는 주민들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는 2백여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그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행진을 벌이다가, 사리원에서 급히 출동한 일본 헌병대에 의해 체포되었다. 결국 이해 5월 29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혐의로 1년 6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르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