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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충절의 고장 함덕 지난 19세기에 일제 국권침탈에 항거하여 오로지 조국의 자주독립과 민족의 생존권을 되찾기 위하여 신명을 받치신 애국선열님들의 드높은 발자취를 되새겨봅니다. 1919년(기미년) 2월 21일 조천에서 일어선 독립만세운동에 한철영 님은 면민의 선봉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하다 일경에 피체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에 정부는 그 공훈을 기리어 한철영 님에게 1993년 3월 1일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31년 1월 5일 본 함덕 출신 한영섭 동지가 서거한 그 시신이 정든 고향에 돌아오니 고종건, 김일준, 김재동, 김진희, 부생종 니들과 함덕 청년 동맹회원들이 장례행렬에 수십장의 만사(輓詞)를 들고 동지들과 제휴하여 독립혁명가를 부르며 운구하여 장례를 지냈고 동년 3월 17일 동지들은 본리 동쪽 고두물 앞거리에 적광 한영섭 기념비를 세우니 일제는 이 비문이 불순하다하여 이 사건에 주동한 자들은 연행되어 옥고를 치렀으며 김재동 님은 1932년 3월 14일 대구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이에 정부는 그 공훈을 기리어 김재동 님께 1993년 8월 15일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고 고종건, 김진희 님께 1993년 4월 13일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애국동지들은 1932년 3월부터 일본 제국주의에 항거하기 위하여 비밀결사대인 제주농민조합을 결성하고 세부활동으로 향동회 민풍진흥회를 조직하여 애국동지들을 포섭하고 독서회를 조직하여 야학을 통하여 부녀자들에게 민족의 역사와 언문(한글)을 가르치며 민족사상을 고취하여 일제 침략주의 정책에 항거하다 일경에 적발되어 1934년 8월에 김일준, 부생종 님들은 일경에 피체되어 옥고를 치렀으며, 부생종 님은 혹독한 고문으로 목포형무소에서 1936년 6월 28일에 28세 젊은나이로 옥사하였다. 이에 정부에서는 그 공훈을 기리어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고 김일준 님께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현사선 님은 1940년 3월 조천소비조합의 항일운동활동이 시발로 일제를 비방하는 내선 일체론의 허구성을 비판하며 함덕 청년동맹회에 가입 청.부녀자에게 민족사상을 가르치며 반일 운동을 하다 1941년 9월 일경에 피체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에 정부에서는 그 공훈을 기리어 1993년 8월 15일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일제의 잔악성을 보면 동지들이 건립한 적광 한영섭 기념비와 옥사 부생종 묘비를 일경이 뽑아다가 조천 주재소에 유치하였다. 1945년 해방이 되어 찾으려고 가 보니 옥사 비는 계단돌로 사용하고 있고 적광 기념비는 부서져 없었다. 임들의 사생취의(捨生取義)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일념으로 일신의 안일을 뒤로 한 채 조국의 자주독립만을 위하여 투쟁하다 희생하였다. 아아, 조국은 해방되었지만 우리는 분단국가로 살아가는 운명에 처했기에 저 세상으로 떠나신 애국선열들의 혁혁한 공훈을 찬양하고 조국통일의 꿈을 염원하면서 함덕리민의 뜻을 모아 이 곳에 기념비를 세웁니다. 2010년 1월 일 함덕리민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