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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연사(文淵社) / 소재지: 제주시 연미마을 문연사는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참판(參判)의 유적(遺蹟)과 귤암(橘巖) 이기온(李基) 선생의 유덕(遺徳)을 추모하기 위하여 1931년 1월에 그의 제자와 지사(志士)들이 귤암의 유허인 오라동 2951(현 제주문화방송, 옛 북제주 군청 주변)에 시설하여 향사(享祀)하던 제단(祭壇)이며 귤암의 비(碑)는 면암참판 유배시 유필을 음각(陰刻)한 것이다. 귤암선생은 광해군에 직간(直諫)하다가 유배된 충신 간옹(艮翁) 이익(李瀷)의 후손으로 제주에 유배온 면암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향리후진 교육에 많은 공헌을 한 분이다. 또 귤암선생의 문하생들은 항일운동에 관여했던 조설대(朝雪臺) 집의계(集義契)의 주축이 되었다. 이 곳 문연사는 1977년 5월 신제주가 건설되면서 도시 계획에 저촉되어 이곳으로 이설 하였으며 지금도 여러 후학과 뜻있는 사람들이 음력(陰曆) 정월(丁月) 중정(中丁)에 제(祭)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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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설대(朝雪臺) / 소재지: 제주시 연미마을 이 조설대는 1905년 제2차 한일협약(乙巳條約)의 체결후 1910년 일본이 한국을 강점(한일합방)하자 이응호(李膺鎬)를 중심으로 한 12인의 소장파 유림(儒林)들이 집의계(集義契)란 모임을 결성 이곳에 모여 항의 의지를 굳히고 울분을 달래며 광복투쟁을 결의하여 석벽에 "朝朝雪臺(조설대)"를 음각(陰刻)하였다. 조설대의 뜻은 조선(朝鮮)의 수치를 설욕(辱)하겠다는 뜻이며 집의계 동지 12인은 진옹(震翁) 이응호(오라인 본관 경주), 소명(少明) 김좌겸(오라인 본관 광산), 백헌(柏軒) 김병로(이호인 본관 광산), 석봉(石峯) 서병수(대구인 본관 달성), 연수(蓮叟) 김병구(도평인 본관 광산), 모송재(慕松齋) 고석구(오라인 본관 제주), 심재(心齋) 김석익(이도인 본관 광상), 죽헌(竹軒) 김기수(영평인 본관 나주), 모헌(慕軒) 강철호(대정인 본관 진주), 소야(小野) 김이중(거로인 본관 나주), 만각(晩覺) 강석종(오라인 본관 신천), 야은(野隱) 임성숙(대정인 본관 평택) 등이다. 특히 이응호는 집의계의 대표로 활약하며 "탁라국서(乇羅國書)"와 김석익의 "탐라기년(耽羅記年)"은 민족혼을 지키려고 기술한 중요한 뜻이 담겨있는 저서이다. 또 이곳 조설대는 마을 고로(古老)들의 구전에 의하면 조선중엽 이후 국상을 당하였을시 리민들이 모여 곡하던 망곡(望哭)의 터로도 알려진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