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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록담(白鹿潭)이었다. 주위가 1리를 넘고 수면이 담담한데 반은 물이고 반은 얼음이었다. 그리고 홍수나 가뭄에도 물이 줄거나 불지 않는데, 얕은 곳은 무릎이, 깊은 곳은 허리에 찼으며 맑고 깨끗하여 조금의 먼지 기운도 없으니 은연히 신선이 사는 듯하였다. 사방을 둘러싼 산각(山角)들도 높고 낮음이 모두 균등하였으니 참으로 천부(天府)의 성곽이었다. 석벽에 매달려 내려가서 백록담을 따라 남쪽으로 가다가 털썩 주저앉아 잠깐 휴식을 취했다. 일행은 모두 지쳐서 남은 힘이 없었지만 서쪽을 향해 있는 가장 높은 봉우리가 절정이었으므로 조심스럽게 조금씩 올라갔다. 그러나 따라오는 자는 겨우 3인뿐이었다. 이 봉우리는 평평하게 퍼지고 넓어서 그리 까마득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위로는 별자리를 핍박하고 아래로는 세상을 굽어보며, 좌로는 부상(扶桑)을 돌아보고 우로는 서양을 접했으며, 남으로는 소주(蘇州)ㆍ항주(杭州)를 가리키고 북으로는 내륙(內陸)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리고 옹기종기 널려 있는 섬들이 큰 것은 구름만 하고 작은 것은 달걀만 하는 등 놀랍고 괴이한 것들이 천태만상이었다.《맹자(孟子)》에 ‘바다를 본 자는 기타의 물이 물로 보이지 않으며 태산(泰山)에 오르면 천하가 작게 보인다.’ 하였는데 성현의 역량을 어찌 우리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또 소동파(蘇東坡 소식(蘇軾))에게 당시에 이 산을 먼저 보게 하였다면 그의 이른바, 허공에 떠 바람을 어거하고 / 憑虛御風 신선이 되어 하늘에 오른다 / 羽化登仙 는 시구가 적벽(赤壁)에서만 알맞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회옹(晦翁 주자를 가리킴)이 읊은, 낭랑하게 읊조리며 축융봉을 내려온다 / 朗吟飛下祝融峯 라는 시구를 외며 다시 백록담 가로 되돌아오니, 종자들이 이미 밥을 정성스럽게 지어 놓았다. 곧 밥을 나누어 주고 물도 돌렸는데 물맛이 맑고도 달기에 나는 일행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이 맛은 금장 옥액(金漿玉液 신선이 먹는 선약(仙藥))이 아니냐?" 하였다. 북쪽으로 1리 지점에 혈망봉(穴望峯)에 전인들의 이름을 새긴 것이 있다고 하는데, 해가 기울어 시간이 없으므로 가 보지를 못하고 산허리에서 옆으로 걸어 동쪽으로 석벽(石壁)을 넘는데 벼랑에 개미처럼 붙어서 5리쯤 내려갔다. 그리고 산남(山南)으로부터 서지(西趾)로 돌아들다가 안개 속에서 우러러보니 백록담을 에워싸고 있는 석벽이 마치 대나무를 쪼개고 오이를 깎은 듯이 하늘에 치솟고 있는데, 기기괴괴하고 형형색색한 것이 모두 석가여래가 가사(袈裟)와 장삼(長衫)을 입은 모습이었다. 20리쯤 내려오니 이미 황혼이 되었다. 내가 말하기를, "듣건대 여기서 인가까지는 매우 멀다 하며 밤 공기도 그리 차지 않으니 도중에 길거리에서 피곤해서 쓰러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잠시 노숙하고서 내일 일을 홀가분하게 하는 것이 어떠한가?" 하니, 일행이 모두 좋다고 하였다. 드디어 바위에 의지해서 나무를 걸치고 불을 피워 따뜻하게 한 뒤에 앉아서 한잠을 자고 깨어 보니 벌써 날이 새어 있었다. 밥을 먹은 뒤에 천천히 걸어가는데 어젯밤 이슬이 마르지 않아서 옷과 버선이 다 젖었다. 얼마 후 또다시 길을 잃어 이리저리 방황하였는데 그 고달픔은 구곡양장(九曲羊腸)과 십구당(十瞿塘 양자강 상류에 있는 험한 협곡) 같았으나 아래로 내려가는 형편이어서 어제에 비하면 평지나 다름이 없었다. 또 10리를 내려와서 영실(瀛室)에 이르니 높은 봉우리와 깊은 골짜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