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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천로는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본침략이 노골화되면서 전국적으로 의병운동이 일어났고, 제주에서도 1909년 2월 25일에 고사훈(의병장이 되면서 승천으로 개명), 이석공(의병장이 되면서 중심으로 개명), 김석윤, 고상옥, 조병생, 김재돌, 약남석, 양만평, 김만석, 한영근등이 모여 국권수호를 위해 고승천, 이중심을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의병을 일으켜 각지에서 의병을 규합하여 3월3일 관덕정에서 거사할 것을 결의 전도에 격문을 사발 공문으로 돌리고, 의병장 고승천과 의병 김만석은 대정으로 가서 의병 300여명을 모병하여 2월 28일 제주로 오다가 대정 동광청리에서 왜경을 급습당하여 항거하다 중과부적으로 3월 1일 의병장 고승목과 의병 김만석이 체포되어 회유하였으나 이에 응하지 않자 3월 4일 대정 동문밖에서 왜경에 사살순국하시다. 당시 의병장 고승천님 집은 의병무기를 제조하는 대장간이었는데 왜경에 의해 파괴되었다. 이 도로를 승천로로 명명함은 선열의 구국정신을 기념하고 후세들에게 나라사랑 정신을 함양하며 계승하고자 광복회 제주도지부의 요청에 의해 제주시는 1997년 고산로~간드락 구간의 도로명을 승천로로 부여하였다. 2000년 2월 새주소부여사업 실시에 따라 현재의 승천로는 연산로~간드락 구간으로 변경되었으나 이 표석 설치된 바로 인접에 의병장 고승천님의 생가가 있어 이곳에 표석을 설치하게 되었다. 승천이란 하늘의 뜻에 따른다는 뜻으로 순국선열 의병장님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