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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신축교안(辛丑敎案)당시, 연락을 받은 두척의 군함 함장들이 사태 수습을 위하여 제주도에 왔지만 교난은 이미 끝난 상태였고, 많은 천주교인들은 관덕정에서 피살되어 주검으로 변해있었다. 이에 그들은 제주목사에게 이들을 매장할 공동안장지를 제공하여 주도록 요청, 약속을 받았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시신들은 제주읍에서 조금 떨어진 별도봉과 화북천사이 기슭에 버려지듯 묻혔다. 그후 불란서 공사가 조선 조정에 편지를 보내어 이 문제에 대한 조속한 해결을 요청하였다. 1903년 1월, 제주목사로 부임한 홍종수와 구마실 신부와의 접촉을 시발점으로 불란서 공사와 조선 조정의 교섭이 원만히 이루어져, 동년(광무7년) 4월에 황사평을 그 매장지로 양도받게 되었다. 당시 별도봉 밑에 임시로 묻혀있던 피살된 교인들 중 연고가 있는 분묘는 이미 다른곳으로 이장 해 간 상태였으므로 무연고 시신들만 이곳 황사평에 이장하였는데, 그 수는 합장한 묘를 합하여 26기의 분묘에 28구였다. 이곳 황사평은 약18,000평으로 신축교난시의 순교자들 뿐 아니라 성직자와 평신도들의 공동 안장지로 사용하고있다. 1988년에 황사평교회묘지를 공원묘지로 조성하면서 울타리 석축공사와 성상들을 건립하고 순교자들의 묘를 평장으로 이장했다가 제주교구 선교 100주년을 준비하면서 재차 단장하게 되어 1995년에 신 아오스팅(재순), 김도마(영만), 양운경외 28기를 합장하기에 이르렀다. 이곳 제주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 위하여 목숨을 바쳤던 신앙의 선각자들을 기억하고, 우리 역시 선배들의 순교정신을 받들어 복음선포에 매진할것을 다짐하면서 삼가 이 비를 세웁니다. 1995.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