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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병항쟁 제주의병항쟁은 1909년 2월 25일, 의병장 고사훈(高仕訓 일명 承天(승천), 景志(경지)), 이중심(李中心 일명 錫公(석공))과 격문 작성자로 창의에 실질적인 역할을 담당한 김석윤(金錫允 일명 석명(錫命), 勤受(근수)) 그리고 김만석(金萬石 일명 光一(광일))·노상옥(盧尙玉)·김재돌(金在乭)·양남석(梁南錫)·조병생(趙丙生)·양만평(梁萬平)·한영근(韓永根) 등 10명의 발의로 벌어졌다. 제주의병항쟁은 만인(萬人)의 의병을 규합, 1909년 3월 3일을 기하여 관덕정 광장에 집결, 일본인 관리를 축출하고 국권을 회복하고자 하였지만 모병단계에서 비밀이 탄로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제주의병항쟁은 제주항일운동사에서 볼 때 일본 침략에 항거하는 도민의 주체적 대응이었으며, 이를 계기로 항일의식을 더욱 고취시켰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자못 크다. 이 의병항쟁기념탑은 바로 이러한 의병 창의자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이를 영원히 후세에 전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