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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어사 백파 신헌구 암행어사 백파 신헌구 선생 1823-1902 백파 신헌구 선생은 1862년 3월 10일 40세의 늦은나이에 문과 정시에 병과 5위로 급제하였다. 1882년 5월 22일 조선은 제물포에서 조미통상조약 대표수석이 백파 신헌구 선생이다. 한미수교 대표였다. 다산선생이 인용한 이 시는 《시경》(정풍)(청인)에서 나온 것인데 춘추시대 정 문공이 신하인 고극을 미워한 나머지 그를 장수로 임명하여 군사를 주어 하수 위에 가서 적을 방어하라고 내친 뒤 종시 기를 불러들이지 않으므로 그에 따른 군사들이 오랜 세월에 지쳐 무료한 나날을 보내던 것을 읊은 시이다. 금석학에도 관심이 많은 그였기에 울진의 왕피천 등 그가 가는 곳 여러 곳에 소요대라는 글자를 세겨 놓은 것으로 다산의 심정과 곳곳에 숨어 있는 인재들을 보는 그의 심정이 통함을 짐작할 수 있다. 해남에서 숨어 일하라 명 받은 당시 상황은 왕실 창고와 국고가 바닥나 어려운 시기이고 곡창지대인 전라도의 조세와 관련된 해운.해창의 관리 문제점과 관계된 사람들의 불법행위 등이 심화되어 이것을 단속하고 해결하기 위한 암행이었고 이를 숨기기 위해 왕에게서 밀명을 받은 후 소요원을 가꾸며 5년간 이곳에 머물게 된 것입니다. 한양으로 돌아간 얼마 후에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시 수석대표를 맡았고 성균관 대사성 형조판서, 한성부 판윤, 예조판서, 경기도 관찰사에 제수되었으며 1896년 중추원 1등 의관에 제수되셨습니다. 여기서 있는 비석은 암행어사로 5년을 마치고 한양으로 떠나면서 전답을 마을에 주고 간 것에 대한 해창주민들이 백파 선생이 살던 집터에 세운 공덕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