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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사(木浦詩社) 목포시사는 1890년 건립된 지방문화재 제121호인 목조기와로 된 집이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4칸, 측면1칸 반으로 지붕은 팔작지붕의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일단의 다듬은 돌기단 위에 정평의 주초를 놓고 민흘림의 원주를 세웠다. 이 건물은 본래 좌우로 후면의 중방이 벽돌로 된 것을 1979년과 1984년 2회에 걸쳐 벽돌을 제거하고 옥개부를 보수하였으며 1995년 완전 해체 복원하였다. 이곳은 본래 1890년에 하정.여규형 등이 건립하여 유산정이라 부르며 문인들에게 시문을 가르치고 백일장 등을 주도하던 곳으로, 1920년에 무정 정만조 선생이 재 확장하여 유산사로 개칭하고, 1932년 중수하였으며, 1937년 목포시사로 개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목포시사는 시인묵객들의 단순한 모임을 넘어 망국의 한과 우국충정을 토론하는 유림의 문학결사단체이기도 했다. 목포시사의 규약에는 시에 뜻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입사할 수 있으나, 윤리에 어긋난 패덕자들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특히 구한말의 유학자 정만조 선생은 이 곳에 머물며 퇴폐한 유풍을 바로잡고 학풍을 진작시킨것으로 유명하다. 선생은 1896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때 이완용의 모함으로 진도에 유배되어 12년간 후진교육과 문학활동을 하였으며, 의제 허백련과 남농 허건 등은 선생의 문하생으로 이들의 호도 선생이 지어주었다고 한다. 매년 봄, 가을이면 전국 유생들이 이곳에 모아 한시 백일장을 개최하는 시사로서 현재까지 한시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무정의 문집을 비롯하여 구한말의 전적과 창사 이래 개최된 백일장에서 입선작 및 문인들의 시고가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