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誠久祠(성구사) 고려말 충신 卞斌(변빈) 선생과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卞延壽(변연수) 장군과 그의 아들 卞笠(변입)의 충절을 기리는 사당이다. 卞斌(변빈) 선생은 고려 공민왕조(1351-1374년) 문하평리(정2품)로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성만용 정몽주 홍제 이색 조열 김성목 이오 등 많은 충신들과 함께 망국의 한으로 슬퍼하다가 기약없이 스스로의 뜻에 따라 행동키로 결의하고 선생은 두문동(개성서쪽15리)에 들어가 고려에 대한 불사이군의 절의를 다하고 죽으니 두문동 72현의 한분이시다. 卞延壽(변연수) 장군은 조선 중종 33년 (1538년) 이곳에서 태어나 무과에 급제하고 훈련원 주부의 벼슬에 올랐으나 휴관으로 향리에서 쉬고 있을때 임진왜란(1592년)을 맞게 되자 아들 卞笠(변입)에게 나라에 목숨을 바칠때라 이르고 즉각 격문을 내어 원근에서 의병을 모아 인근 장병골에서 훈련, 연해의 출몰 왜적을 격퇴하고 이순신 장군 휘하에 합류하여 당포와 옥포해전에서 적을 크게 무찔러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며 정유재란(1597년)때 당포해전에서 아들 卞笠(변입)과 함께 사력을 다해 적과 싸우며 용전하다 순국하셨다.. 아들 卞笠(변입)은 전사한 아버지의 시신을 안고 통곡하며 父命(부명)에 따라 마지막까지 분전하다 그도 또한 아버지의 뒤를 따라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나라에서는 卞延壽(변연수) 장군에게 증 병조판서 아들 卞笠(변입)에게 증 좌승지의 첩지를 내리고 고향에 정려(삼강려)를 내려 후세 귀감으로 삼게 하였다 세상에서는 이 세분을 일러 卞氏三賢(변씨삼현) 또는 三忠(삼충)이라 일컫는다. 성구사는 후손들과 전국 유림에 의하여 1914년 인근 서제골에서 이곳에 이축하여 세워졌으며 매년 제향을 올린다. 그리고 경내에는 도산서원과 일신제 존양제 등 부속 건물이 있다. 창녕후인 한메 조현판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