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page


215page

1910년부터 창원에서 애국유지로서 사립경행학교를 설립하여 후진양성에 기여하여 왔다. 1919년 3월에 3·1독립운동이 발발하자 권영대·변상섭등과 이 지방의 거사를 의논하고, 거사일을 다가오는 고현 장날로 약정하여 태극기를 만들고 선전격문을 쓰고 독립선언서를 작성하는 등 거사준비를 갖추어 가는 한편 각 면·동으로 다니면서 동지와 대중규합에 노력하였다. 약정한 3월 28일의 장날 오후 1시경이 되자 예측대로 많은 장꾼이 모여들었고 권영대의 선창과 지휘 아래 장터 곳곳에 대기중인 동지들이 일제히 태극기를 휘두르면서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고 이어서 독립선언서와 선전격문을 살포하였다. 그는 500여명의 주민과 함께 시위를 주동하다가 이해 3월 28일 오후 5시경 진동헌병주재소에 피체되었다. 그는 이해 5월 29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