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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암 장지연 묘 | 韋庵 張志淵 墓 /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94호 대한제국 말기의 우국지사이며 언론인이었던 위암 장지연 선생은 1864년(고종 1)에 경상북도 상주에서 출생하였다. 자(字)는 순소(舜韶), 호(號)는 위암(韋庵)이다. 1894년에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었다. 일제가 명성황후를 시해하자, 의병의 궐기를 호소하는 격문을 지었다. 1898년에는 관직을 버리고 남궁억(南宮檍) 등과 함께 황성신문을 창간했고, 독립협회에 가담하여 이상재(李商在), 이승만(李承晚) 등과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였다. 1905년 11월 17일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황성신문에 「오늘 소리내어 크게 운다」 是日也放聲大哭(시일야 방성대곡)의 사설을 발표하여 일제의 침략에 통렬히 반박했다. 1908년 블라디보스톡으로 망명하여 해조신문의 주필로 활동하다 귀국하여 경남일보의 주필이 되었으나, 1910년 일제의 합병으로 비탄의 나날을 보내다, 1921년 여기에 묻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