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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정화암 선생 사적비 선생은 구한말의 풍운 속에서 태어나 망국의 슬픔을 몸소 겪으면서 청운의 뜻을 굳혔고, 3.1운동의 봉화 속에서 독립만세의 파도속에 묻혔으며, 중국으로 건너가 천신만고를 감수하시면서 상해로 북경으로 북만주로 전전하고 대륙의 동서와 남북을 종횡으로 누비면서 때로는 노동운동 선무공작을 벌이고 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과 남화한인연맹을 조직하고 이를 기반으로 구국연맹행동대(흑색공포단) 서간단, 유격대 등을 편성하여 항일운동을 하였습니다. 8.15 해방후에도 일신의 영달을 꾀하지 않고 중국에 머물면서 교포들의 교화와 교육에 주력하시고, 중국의 저명인사들과 같이 한국학연구의 길을 트는 등 오직 조국만을 위하여 헌신하셨으며, 늦게 귀국해서도 잘못된 정치현실을 꾸짖고 반독재 민주회복투쟁에 앞장서는 등 한평생을 의협과 의분으로 싸우셨고 고결하게 지조를 지켜오셨던 진정한 애국자이며, 무정부주의자로서 참된 민주건설에 헌신하셨던 투사였습니다. 반독재투쟁을 하여 일시 옥고도 겪었습니다. 선생의 한 평생은 헤아릴 수 조차 없는 위기와 굶주림 속에서도 인내와 투지로서 역경을 이겨내고 조국광복에 이바지한 투쟁의 연속이었으며, 그 많은 쾌거들은 산하를 진동시키고 누구나 울음을 금치 못하게 하는 장엄한 기록들이었습니다. 선생의 투쟁 경력은 중국사료에도 전형적인 혁명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선생께서 만일에 자기선전을 하고 권모와 술수로서 자기의 업적을 과시하고 현실정치에 부화를 했더라면 아마 선생은 상당한 대우를 받았을 것이며 말년에 그처럼 쓸쓸한 생애를 마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처럼 선생은 일신의 영화를 탐내지 않았으며 자기의 이념과 소신에 철저하셨습니다. 참으로 선생은 우리 독립운동사, 민주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진정한 독립투사요, 민주주의자요, 애국자였습니다. 한 평생을 자신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국가와 민족만을 위하여 헌신하여 오셨던 선생에게 우리는 겸손하게 고개를 숙일 뿐입니다. 선생은 생전에 국가에서 주는 훈장이나 연금을 거부하였고 혁명적 지조를 지키다 가셨습니다. 국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83년 8월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으며, 이곳 금산사 앞뜰에 건립한 정화암 선생 사적비는 뜻있는 인사와 김제시의 협조하에 1992년 12월 15일에 건립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