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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관수등과 유대하며 반일운동을 선동하고 기미독립만세사건에 깊이 관련되어 공주형무소에서 3년간 영어되셨고 은거참례하면서도 김제 청운의숙과 백학보통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경술국치이후로 왜노목적상을 항의규탄할뿐아니라 조선일보 이리지사국장을 겸임하면서는 언론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을축4월 11일에는 이리청년회와 노동조합을 조직 결성하고 조합장으로써 정재양민을 표방하고 기권익보호에 앞장서며 사무실 옥상에는 단결이라는 대형기치을 세우고 민심을 환기시키며 신간회와 애국부인회등으로 민족각성과 결속을 위하려는 10여개 단체를 조직하고 강화라는 이외에도 병인8월에는 지우당이라는 극비의 당을 조직하고 배헌 임영택 임혁근 조명희 이동지 김병수들과 반일투쟁하며 재만동포옹호위원사건에 이러 이리폭발물 사건으로 기사11월 군산경찰서에 구속되었고 무진3월에는 전주형무소에서 6개월간 징역사리 한 후로는 더욱 반일운동을 강행하며 노해교사건과 만보산사건의 연유로 또 다시 대구형무소에서 3년간 감옥사리하신호누는 광주에 있는 호남지구 사상관찰소의 제1호 요시찰 인물로 자택연금당하니 혹독한 탄압과 감시로 불고출입수년이라는 기간의 태독과 질병으로 신음중에도 목전왜망에 아자주독립이라 보수설한 아쉽고나 하시면 광복직전인 을유5월 19일 원졸하시니 오호라 애재라 통재로다. 평생을 감시와 구속과 태형과 고문의 철장속박의 철전지한인 삶의 참황사가 실기되여있었으나 경인6월 25일 국내사변의 병화로 모두 화소되어 실사확인부재아며 이제까지 미수훈였으나 김제 익산 이리지역 연노며는 누구나 주지지사라. 특히 정인화 이태술 양노옹께서는 직접참여로 밀의행보한 실증외에도 기지사실인지라. 계유지년에 진충보국의 건국포장이 수여되였으니 유충유효는 유방백세지사로다. 이 나라 금수강산과 민족의 안녕만을 위하여 싸우신 선생의 고귀한 애국애족의 의적가행을 당시인 부재고로 전모사실구현 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