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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정읍(井邑)군 고부(古阜)면에서 태어났다. 태인(泰仁)에 거주하며 유학자로서 명망이 높았다. 1895년 10월 일제가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만행을 자행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통분하여 국가의 운명을 개탄하며 두문불출하고 학문을 닦았다. 1905년 11월 일제가 무력으로 고종과 대신들을 위협하고 소위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자 최익현(崔益鉉)과 함께 의병을 일으킬 것을 계획하였다. 1910년 8월 일제가 한국을 병탄하고 나라가 망한 후 일제가 주는 노인 은사금(恩賜金)을 거절하고 독립을 역설하다가 일제 헌병대에 체포되었다. 그는 군산으로 압송 도중에 만경사창(萬頃沙倉)의 나룻물에 투신했으나 일제 헌병이 한사코 건져내었다. 군산감옥에 투옥되자 9일간 단식을 결행하여 자결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충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