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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수탈에 항거한 옥구농민항일항쟁 옥구농민항일항쟁은 악랄했던 일본의 식민 지배에 정면 대항한 사상 초유의 농민저항운동이다. 일찍이 3.1운동의 열기가 뜨거웠던 군산지역에서는 민족 저항정신이 확산되면서 옥구농민조합(1926), 서수농민조합(1927), 서수청년회(1927) 등이 조직되었다. 이들은 언론의 자유를 외치고 악덕 농장주에 대항하는 시위를 벌이며 일제에 저항하였다. 1927년 11월, 일본인 지주들이 공동 설립한 대규모 농장인 이엽사 농장에서 수확한 곡물의 75%를 소작료로 요구하였다. 농민조합에서는 생존을 위해 소작료를 인하해줄 것을 여러 차례 요청하였으나, 이를 묵상당한 끝에 11월 25일 소작료 납부 거부를 결의하였다. 다음날 농장 측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농민 간부 장태상을 술산주재소에 감금하였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500여 명의 농민들은 징을 울리며 몰려가 주재소를 부수고 장태상을 구출한 뒤 만세를 불렀다. 또한 서수주재소에 감금된 농민 간부 박상호도 구출하였다. 경찰은 80여 명의 농민들을 체포해 혹독하게 취조하였고, 체포된 농민 중 34명은 실형을 선고 받아 옥고를 치렀다. 이러한 옥구농민항일항쟁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전개된 농민항일운동으로서, 일제의 착취와 폭압에 항거한 대표적인 항일투쟁으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