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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심원사지 심원사(深源寺)는 신라 진덕여당 원년(657)에 영원조사가 영주산(현 보개산)에 흥림사를 창건한 것이 시초였다. ..중략..순종 융희 원년(1907) 을미의병이 봉기할 당시 심원사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의병들을 진압하기 위해 투입된 일본군 수비대 김화수비대의 기습공격으로 250칸의 사우와 1,602위의 불상이 소실되고 말았다. 1909년부터 복구 사업이 시작되었으며 1936년에는 승려의 교육을 위한 근대적 강원인 화산경원이 설립되어 한국 근대 불교의 중흥을 이끌어 가던 경기북부지역의 대표적인 사찰로 거듭나게 되었다. 1942년에 편찬된 유점사본말사지 제5말사편의 '심원사지'기록에 따르면 당시의 심원사는 12곳의 암자와 32위의 탱화, 1609위의 불상, 탑2기, 250간의 당우를 갖추었고 사찰내에 천불전, 봉향각, 산신각, 객실 등의 전각이 있었던 것으로 전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전쟁의 전화를 비껴가지 못하고 사찰은 다시 한 번 소실되고 말았다...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