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page


6page

비문 민족적 굴욕과 국치의 비운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고 조국독립의 욕망은 목숨보다 강하였기에 1919년 3월 천지를 일깨우듯 우리민족은 세계만방에 자주독립국임을 선언하고 일제의 총칼앞에 분연히 일어나서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이로써 국권회복을 위한 울분의 함성과 그 통한의 절규는 메아리되어 빛나는 척주의 땅 삼척에서도 횃불처럼 타올랐다. 1919년 4월 15일 하오 삼척보통학교 교정에 운집한 176명의 전교생은(김치화, 김봉호, 홍동균, 김달하, 오원모, 심부윤)등의 학생대표와 김기식 선생의 지도 아래 재경유학생 김순하로부터 전해받은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조국의 독립을 갈구하는 만세를 불렀다. 그 파문은 이틀후인 1919년 4월 17일 송정보통학교 학생 50여명이 만세운동을 일으켰으며, 1921년 11월 9일 태평양 만국회의의 자극을 받은 삼척보통학교 학생들은 심부윤, 김윤달, 최삼용을 주축으로하여 또 다시 일제에 항거하는 동맹휴학, 민족자결의 선언문 배포 등 항일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그토록 거룩한 선열들의 독립운동은 만고에 길이 빛나며 우리들 삼척인의 가슴마다 깊이 새겨져서 이 땅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광복후 45년이 지난 오늘 늦게나마 독립만세운동의 진원지였던 이 자리에 기념비를 세워 3.1운동의 정신과 희생을 기념하고 재천하신 영령들의 명복을 빌며 그지없이 솟구치는 추모의 단성을 모아 후세에 전하고자 한다. 1990년 3월 1일 3.1운동 만세기념비 건립추진 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