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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오(菊塢) 황만영(黃萬英) 선생 가옥 이 집은 황만영(1875~1939) 선생이 결혼하면서 분가하여 살았던 집을 최대한 원형에 맞게 복원한 것이다. 선생은 해월헌이 있는 해월종택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평해, 호는 국오, 자는 용칠이다. 해월 황여일의 11세손이고, 황수의 아들이다. 청년 시절 한학을 배우며 조선의 현실과 운명에 관심을 가지고 민족의식을 키웠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곳곳에서 의병이 일어날 때, 울진에서 활동하던 성익현 의병부대에 군자금 800냥을 지원하였다. 1907년 신민회가 결성되자 회원으로 가입하고, 이어 고향 기성면 사동리에 대흥학교를 세워 인재를 양성하였다.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자, 독립군 기지가 건설되고 잇는 만주 길림성 유하현 삼원포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의 모태인 신흥강습고 설립에 참여하였다. 1913년에는 노령으로 이동하여 그곳의 독립운동가와 교류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연해주 대한국민의회에 참가하는 한편, 9월에는 주진수 등과 함께 만주로 파견되어 순회강연을 개최하면서 국민들의 항일의식을 고취시켰다. 1920년대 주안 군자금 모집을 위해 국내에 들어왔지만, 일제의 감시로 만주로 돌아가지 못했다. 대신 1927년 12월 신간회 울진지회의 회장에 선임되어 민족협동 전선운동에 기여하였다. 1995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따라서 선생의 가옥은 지역 정신사의 중요한 유적이며, 후손에게 물려주어 나라사랑이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장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