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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괴수가 심문하니 공의 나이 50이라. 천명을 아느냐?하니 공이 말하되 "순천리수인사시지명야라"하였다. 왜구가 속이지 말고 작언하라 위협하니 굴하지 않고 생을 버리고 의를 따라 행동함이 어찌 속임이 있겠느냐? 또 되묻되 글을 읽고 화적된 것은 어떤일이냐 호통치니 답하되 왜인이 남의 나라를 뺴앗은 것이 큰 도적이지 나라를 위해 의를 행함이 어찌 화적이란 말이냐 하였다. 훗날 면암은 대마도에 피구되고 화은공을 비롯한 12의사는 수태백도의 형을 가하여 축출하니 고향에 돌아와 백절미회하고 구사불변이라돠. 거사는 비록 성공치 못하였으나 구국을 위한 의거로 후세에 길이 빛나리라. 면옹이 대마도에서 별세 운구함에 뼈를 상하여 문병치 못하고 슬픔의 세월속에 71세로 영면하시니 백운산에 장사후 1991.11.1엘 대전국립묘지로 안장하였다. 1977년 12.13 조국자주독립에 헌신하였음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고 1990.12.26 헌법규정에 따라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다. 세 임인 모춘에 은진, 송재성님이 공적비문을 지으셨으며 서기 2006년 입하지절에 족손 소암동하문루하고 추가 공적비분을 지으셨다. 순국선열의 구국충정에 빛난 유적을 거북좌대 무궁화에 수비각명하여 충의 정신 영원히 간직하고 구국충성의 지표로 삼고자 이에 청풍면 번영회장 문찬식을 비롯한 면민의 뜻을 모아 화순군의 예산지원을 받아 순국선열을 추모하며 이에 공적비를 세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