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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월환 장군 묘비문 조국 광복운동에 뚜렷이 빛나는 자취를 남기신 나월환 장군은 고려 개국공신 금성부원군이신 휘 총례의 31세손으로 1909년 음 2월 13일 애국충절이 많이 배출된 호남땅 나주에서 아버님 종성씨의 4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나셨다. 본관은 금성이고 호를 송죽이라 하셨으며 기절과 용맹이 뛰어나 호랑이라는 별명을 가지셨다. 일본 동경에 유학하셨다가 뜻한 바 있어 중국으로 건너가 남경 중앙군관학교를 졸업하시고 중국군 중령으로 활약하시다가 임시정부 산하에서 오직 구국일념으로 항일운동에 적극 가담하여 많은 공적을 쌓으셨고 군관학교 동지들을 중심으로 많은 구국 청년을 초모하여 한국청년전지공작대를 결성하였으며 동지들의 추대로 대장에 선임되어 눈부신 활약을 하셨으며 대일항전의 주체인 광복군이 창설되자 장군께서는 제5지대장으로 많은 동지들을 규합하여 적의 전후방을 침투해 혁혁한 전공을 거두셨다. 1942년 3월 1일 서안에서 배반한 동지의 손에 아깝게도 목숨을 잃으셨으니 슬프다. 장군의 일생은 오로지 조국의 광복을 위해 몸과 마음 모두를 바치신 거룩한 삶을 누리심이었다. 장군의 뒤를 이을 혈손이 없어 적막함을 느끼기도 하나 다행히 조카 기남을 입양하고 장군께서 태어나신 고향의 나씨 문중 여러 유지분들이 장군의 높고 훌륭한 업적으르 기려 길이 뒷날에 전하고자 유택을 가야산 기슭에서 이곳 백룡산 복룡으로 옮기고 새로 비석을 다듬어 세우니 장군의 영령께서도 흐뭇해 하실 것이다. 국가에서 장군의 공적을 받들어 1963년 정부로부터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을 받으셨으며 장군의 자세한 항일투쟁 경력은 독립운동 관계 여러가지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나에게 비문을 청하기 대략 위와 같이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