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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이 없으면 나와 후손이 설 땅이 없고 나와 후손이 굴욕의 멍에를 쓰는 것은 필연이라. 빼앗긴 조국 다시 찾기 위해 피흘리고 가신 수많은 선열들. 해방은 되었지만 외세 따라 두동강이 난 조국이 광복의 첫 장이거늘 조국분단의 현세 속에 평안히 잠드실 선열 어디에 계시리요. 그 중 한 분의 선열이 무학의 멧부리를 맴돌고 계시니 선생은 나주 정씨 설제공의 21세손인 덕은거사 우명공의 맏아들로 1867년 4월 22일 당시의 나주군 삼도면 양동마을에서 태어나시었으니 호는 만오재요 설사이시며 휘는 동근 선생이시라. 선생은 약관에 부친이 사우하신 불멸의 독립투사 면암 최익현 선생의 문하에서 수학하시었다. 1880년대에 겹친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으로 국운은 날로 쇠퇴하여가고 청일양국 등의 내정간섭은 심화되니 이를 심상치 않게 여기선 선생은 한말 최후의 나주 목사 민종렬 공을 찾아가 조국의 안위를 걱정하시고 그 대비책을 논하시며 선생의 파란 많은 구국운동은 시작되시었다.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