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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인은 1907년부터 1909년 사이에 전남 영암군(靈巖郡) 등지에서 의병 수십 명을 모아 의병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나성화의진(羅成化義陣)과 연합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나성화 의병장은 당시 심남일의진(沈南一義陣)의 후군장으로 활동했으며, 전남 무안(務安)ㆍ영암ㆍ남평군(南平郡) 등지에서 일군과 교전하였다. 이처럼 전라도 지역의 의병들이 조직적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하자, 일제는 대규모 군대를 동원하여 의병 진압에 나섰다. 1909년 9월부터 약 2개월간 일제가 실시한 남한폭도대토벌작전(南韓暴徒大討伐作戰) 시기에 정태인도 체포된 것으로 보인다. 1909년 12월 24일 광주지방재판소(光州地方裁判所)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