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page


169page

의로운 나주인 김철선생의 삶. 나추출신으로 광주에서 3.1운동 주도 김철 선생의 본명은 복현, 호는 하산이다. 1890년 10월 7일 나주단발령 의거를 주도했던 김창곤의 다섯째아들로 태어났으나, 단발령 의거가 실패하자 김창곤이 처형당한 후 어려운 유년기를 보냈다. 1919년 교회활동을 통해 항일운동을 모색하던 그는 광주, 전남지역의 3.1운동 책임자로 추대되어 광주3.1운동을 주도했으며, 목포와 나주등을 방문해 전남 각지로 시위를 확산시켰다. 3.1운동으로 체포되어 재판에 섰을 때 " 이 운동의 주도자는 나다, 내 지시에 따라 행동한 학생들은 그냥 돌려보내라. 내 이름은 김청이다. 소닌 불을 달구고 두들길수록 더욱 단단해진다. 얼마든지 해 볼 테면 해봐라"라고 주장했는데, 이때부터 철(鐵)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고 건준이 해체된 후 인민위원회에서도 부위원장직을 맡았으며, 1946년 신민당의 전남지부 위원장으로 활동하는 한편 조선인민당에서도 활동했다. 그러다가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다시 옥고를 치르고 분파투쟁의 과정에서 소외되면서 이선으로 물러나 친일세력의 재등장과 남북 분단, 정치 부태, 동족상잔의 전쟁을 목격하면서도 그저 한숨으로 밤낮을 보냈다. 1960년 4.19혁명 이후 사회대중당 전남도당을 결성했고 이후 사회대중당에서 분리된 사회당 고문을 맡아 민주주의의 완성과 조국통일을 위한 마지막 투쟁을 전개한다. 그러니 이 역시 5.16쿠데타로 짓밟혀 버렸고 민주주의와 통일의 비원을 가슴에 묻은 채 1969년 가족의 품에서 세상을 떠났다. 김철선생은 항일민족운동의 침체기였던 시기에 나주출신으로 광주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해 전남지역의 3.1운동을 촉발시킴으로써 나주인의 의로운 기상과 민족정신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