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page


53page

김응선은 충북 옥천 출신으로서 1907년 일제에 의하여 군대해산이 강행되자 조국의 미래를 통한히 여겨 일본의 내정간섭에 적극 반대하고자 의병을 일으켰다. 이때 구한국군 하사 출신으로서 전라도 일대에서 의병을 일으킨 문태수 의병장이 전라도와 경상도 일대에서 위명을 드날리고 있었다. 이에 김응선은 문태수 의병장의 의진에 입대하여 활약하였다. 그후 만주로 망명하여 정의단에 입단하여 조국광복운동에 헌신하였다. 이들은 보다 본격적이고 효과적인 전략으로서 국내진입을 감행하여 일제의 치안질서를 교란하고자 계획하였다. 밀명을 받은 김응선은 정명옥·송암우·정석조·정원득·김봉준·남정 등과 함께 총독관저 등 5개 처의 일관공서를 폭파할 목적으로 국내로 잠입하였다. 이들은 서천 수리조합에서 폭약을 구해 폭탄 6개를 제조하여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러나 계획을 실현시키기도 전에 일경에 탐지되어 1927년 6월 20일 청진동 진일관에서 동지 전원이 체포되었다. 이들은 경성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그해 9월에 김응선은 주모자로서 징역 4년형을 그리고 정명옥·김봉준·송암우는 징역 1년 6개월, 김운용은 징역 1년 그리고 정석조는 금고 3개월형을 각각 언도받았다. 김응선은 서대문 감옥에서 4년 동안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