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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청산현이라 하던 이곳은 동학혁명 때인 포던 35(1894)년 10월 16일(음 9월 18일) 천도교 제2세 교조 신사 해월 최시형 어른이 전 동학군에게 재기포령을 내린 역사적인 고장이다. 우리 나라에 침입한 일본군은 그 해 6월 궁궐까지 점거하면서 주권을 유린하였고, 이어서 청일전쟁을 도발하여 중국 대륙을 침범하며 우리 나라를 강점하려는 야욕을 들어냈다. 해월신사는 "호랑이가 몰려들어오면 가만히 앉아서 죽을까, 참나무 몽둥이라도 들고 나가서 싸우자"고 하시며 전동학군에게 항일전에 나서도록 기포령(총동원령)을 내렸다. 동학군들은 보국안민, 제폭구민, 척양척왜의 깃발을 높이 들고 도처에서 일어났으며, 11월 8일에는 청산에 모여 대회를 열었다. 이 모임에서 동학군 북접통령이 된 의암 손병희는 해월신사의 명교에 따라 논산으로 출동하며 11월 13일 전봉준 장군이 이끄는 호남 동학군과 합류하였다. 11월 17일 경천접으로 진출하여 이인에서 관군을 물리치면서 공주성을 공격해 들어갔다. 우금티를 사이에 두고 신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과 관군을 수십 차례 공격하면서 엄청난 피를 흘린 동학군은 12월 7일 적의 기습을 받아 수많은 희생을 당했으며, 논산과 원평에서 저항을 했으나 당해낼 길이 없었다. 그러나 해월신사와 손병희가 이끄는 동학군은 다시 영동 용산전투와 청산전투, 보은 북실전투를 거치며 저항하다가 이듬해 1월 19일 음성 금왕시 되자니에서 최후의 전투를 끝으로 동학혁명은 막을 내려야했다. 비록 일본군의 신무기 앞에 동학혁명은 성사되지 못했으나 조국과 민족의 앞길을 열기 위한 동학혁명정신은 1904년의 갑진개혁운동과 1906년의 의병활동, 그리고 1919년의 3.1독립만세운동, 1920년대의 신문화운동을 통해 면면히 이어져왔다. 이에 우리 후학들은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이신 해월신사의 보국안민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순도 100주년을 맞아 이 비를 세워 후세에 전한다. 포덕 138(1997)년 11월 7일 천도교 중앙총부 해월신사순도 100주년 기념사업회 건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