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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본관은 함창이요 휘는 순구 호는 검힌재로 고령 가야앙의 후손이시며 병조참의 김유혁의 17세손이요 국가에서 효자상을 받은 희천군수 김영복의 16세손이시며 휘 김만화를 고로 안동김씨를 비로 서기 1867년 1월 16일 충북 옥천군 군서면 하동리 마고촌에서 출생하시고 서기 1919년 6월 28일 공주감옥에서 향년 53세로 순국 옥사하셨다. 선생께서는 일찌기 재당숙이신 부사 김용대로부터 견이사의와 견위수명하는 우국충절의 교훈을 받으며 덕망과 인격을 도야하시더니 서기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를 당하자 애국충정으로 분연히 일어스셔서 회인 문의 청주 괴산 등지에서 애국동지를 규합하여 독립운동을 펴시어 서기 1919년 3월 19일에 옥천의 만세운동을 시발로 동년 3월 23일에는 강내면 산마루에서 3천 여 군중을 지휘하면서 봉화를 올리며 독립만세운동을 하셨고 동년 3월 30일에는 청주에서 수천의 군중을 지휘하였으며 동년 4월 8일에는 선생의 고향인 군서면에서 500여명의 군중을 이끌고 독립만세를 부르셨으며 계속하여 충청도 일원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시던 중 동년 4월 8일 독립만세운동 참가한 동지들이 체포되어 옥천경찰서에서 고문을 당하자 동년 6월 5일 경찰서에 뛰어들어 폭악한 왜경에게 항거하시다 주동자로 구금되어 공주감옥으로 이감 공주법원에서 징역 언도를 받으시고 복역 중에도 독립운동을 중지하지 않으시다가 끝내 옥중에서 운명하시였으니 선생께서는 오직 나라를 다시 찾겠다는 순국일념으로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셨읍니다. 선생의 그 숭고한 애국정신과 위대한 독립운동의 업적을 우리 후손들에게 길이 귀감으로 삼게 하고자 국가에서 서기 1977년 12월 13일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고 이어 이에 묘비를 세우도록 하였음을 우리 군민들은 무한한 영광으로 여겨 온갖 정성을 다하여 이 비를 세웁니다. 서기 1985년 11월 일 옥천군수 글 서예가 금기풍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