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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게 강탈당한 조국을 되찾고자 일제의 침략세력과 싸워 청춘을 헌신한 독립투사 성권호 선생은 창녕 성씨로써 시조 중이공 인보의 23세손이며 상곡고이 예조판서 대제학 좌찬성을 역임한 정평공의 18대손으로 서기 1921년 12월 28일 중? 대전시 ?시동 305번지에서 출생하시니 천품이 총명하고 용략이 투철하여 준재라고 명성이 높으니 대전 중학의 학생 시절에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의분을 금치 못하고 항일애국정신이 폭발하여 1939년 초 동지인 양기영 동지를 규합하여 일제가 총검으로 강요하고 있는 조선어 사용금지 황국신민의 서사음송 매일 신사참배 등 우리 민족을 왜인과 동화시키려는 행위를 절대 불굴하는 운동을 벌여 교내외의 한인학우들에게 동조할 것을 계도하고 각학교의 신사에 인분을 퍼부었으며 일제의 징병으로 끌려가게 된 청년들의 집에 당신은 한국인임을 잊어서는 않된다라는 어구와 태극기가 그려진 전단을 만들어 배부하여 항일사상을 주입시켰으며 신사와 군수공장을 폭파시키려고 대전비행장 건설 공사장에서 폭약과 뇌관 5개를 구입하고 기회를 노리다가 일본헌병대에 발각되여 1941년 2월에 체포되여 재학중인 각문중학도 퇴학당하고 3년간의 쓰라린 옥고를 겪으시고 1943년 11월말 출감하시여 삼엄한 감시속에서도 항일운동을 계속하시다가 1945년 조국광복을 맞으셨으며 1976년 음 6월 26일 56세를 일기로 서거하시니 일신의 안락이나 영달의 길을 버리고 오직 민족의 대의와 불굴의 기혼으로 조국광복에 투신한 공을 높이 평가하여 1977년 정부에서 건국공로표창을 추서하였거니와 그 숭고한 위업과 불멸의 독립정신을 아로새겨 길이 후세들에게 귀감으로 보전시키기 위하여 보훈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