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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하고 독립만세를 선창하니 그 드높은 의기는 창공을 찌르고 장엄한 함성은 산천을 진동케 하였다. 애국충절이 발로된 수백 군중은 분화구의 화염처럼 태풍 앞에 성난 파도처럼 궐기하여 일대 시위를 감행하니 당황한 왜병들은 시위 군중을 향하여 무차별 발포를 자행하니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공은 격분하여 시위 군중을 이끌고 왜병주재소를 전격 파괴 방화한 후 체포된 동지들을 구출하고 다시 옥천의 왜병 승마의 앞다리를 화목으로 처서 부러뜨리고 대전에서 증원된 적병의 협공을 받아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도 용맹하게 투쟁하다 체포되니 어찌 통분을 금할 수 있었으랴. 그러나 온갖 잔악한 고문과 옥고에도 오히려 독립의지를 굴함이 없이 공주 옥중 생활에서도 공은 8인의 동지와 함께 형기 3년 동안 계속된 항쟁의 선봉이 되었으니 필부의 높은 뜻도 감히 빼았지 못한다는 말이 공을 두고 한 말이 아니었던가. 출옥후에도 향민에게 국가의 자주독립 정신을 가일층 고취하기 위하여 창씨개명과 같은 왜적의 씨족 말살정책에도 강력히 반대운동을 전개하니 공이야말로 독립운동의 불사신이였던것입니다. 그뒤 공과 같은 애국지사의 독립투쟁은 결코 헛되지 않아 1945년 8월 15일 조국광복이 되어 삼천만 민족이 질곡으로부터 해방되고 반만년 역사위에 조국독립의 서광이 충만하였어라. ...에 깊이 감화된 면민들이 1958년 이원역전에 3.1독립운동기념비를 세웠고 1977년 정부에서도 건국공로훈장을 추서하니 공의 위업은 한민족의 가슴속 깊이 영원히 빛날것이로다. 많은 옥고의 여독으로 신음하던중 1958년 계해 3월10일에 서거하여 이원면 수묵리에 안장하였으며 배 경주김씨 ?2녀니 1887년 무인 7월 9일생으로 1939년 1월 29일에 운명하니 쌍분하였다. 아들인 종환과 손자인 태면과 그 대를 이어가고 있다. 이와같은 지사의 빛나는 애국운동의 업적을 통하여 조국애에 불타오르는 민족과 애국정신으로 무장된 국가는 융성한다는 역사의 순리를 알수있다. 조국애와 민족애의 두가지 정신으로 일관된 공의 일생이야말로 조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