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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찬 선생은 충북 옥천(沃川) 사람이다. 1919년 3월 27일 옥천군 이원(伊院) 장날을 이용하여 육창주(陸昌柱)·허상기(許相基)·김용이(金龍伊)·허 양(許樑)·이면호(李冕鎬)·허상옥(許相玉) 등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주민 300여명을 규합, 태극기를 배포하며 독립만세를 부르고 주재소를 습격하여 이전에 구속된 시위자의 석방을 요구하며 기물 등을 파괴하는 등 시위를 전개하다가 일경의 무차별 총격으로 시위대열은 강제 해산되고 동지들과 함께 피체되었다. 같은 해 5월 5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과 소요로 유죄판결을 받고 공소를 제기하여 6월 2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징역 10월형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