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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1월 20일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어 중국 화중지방으로 송출되었으나 동년 5월 일본군을 탈출하여 구사일생으로 중국군에 접선하여 중국군 정보장교로서 대일본 심리전과 유격전등에 참가하였다. 특히 공은 4개국어 중영일어에 능하여 제2차대전중 최적의 정보요원으로 활약하였다. 그 후 광복군에 입대하여 제1지대 제3구대 창설요원으로 중국 호남성 장사지구 파견대장으로 유양에 주둔하여 일본군 초소폭파와 교량폭파등 각종전투에서 활하다 종전이 되자 중국 강서성 남창에서 패전 일본군의 무장해제에 참가한 후 1946년 6월 철기 이범석장군의 지휘하에 환국하여 교육계와 금융계에 종사하면서 소년기의 꿈이었던 농촌운동에 정진하여 연기군농협감사로 8년간 재임하고 이사를 거쳐 고향인 전의농협 초대 조합장으로 선출되어 11년간을 불원가사 구농 일념으로 자립 시범육성기반을 확립하는데 진력하였다. 어렵던 초창기에는 19개리 연합구판장 상무이었던 전사용씨와 이사 김진반 김상현 정해영 임채용 손진 이희징 윤용호 홍순경 정종두 부녀회장 최동문씨등의 헌신적인 봉사로 전의조합의 기반을 확고히 하였다. 한편 신진농사회를 조직하여 40년간 농촌운동을 전개하였고 충청남도 단위농협조합장 협의회 회장 겸 전국 조합장 협의회 부회장을 역임하여 전국농협의 결속운동을 선도하였으며 또한 타 조합보다 먼저 서울에 구판장을 개설하여 지역 경제발전에 기여하였고 1980년 노협중앙회에서 조합임원들을 부당하게 해고할때 전국투쟁위원회 위원장으로서 그들의 복권을 위하여 규탄하는 등 항시 농협의 원론 주의자로 농협민주화의 선봉이 되었다. 이러한 노력과 공적이 인정되어 충청남도 단위조합장 상패를 수상하고 국가로부터 1982년 독립유공 대통령표창을 수상하였으며 1990년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훈하고 모교로부터 자랑스런 양정인상을 수상하였다. 공은 현재에도 광복회 홍보위원 광북군 동지회 상임위원 독립유공자협회 상임이사 광복회 경기도 지부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