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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장 임대수(1882.2.12~1911.6.16)는 부안인이다. 고려후기 연기 입향 시조인 공조전 서난수의 19대손으로 충남 연기군 남면 송담리 표석동에서 태어났다. 초명은 학수이고 자는 호경으로 어려서부터 정의심이 강하였다. 그는 1905년 을사조약이 늑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울분을 참지 못해 항거투쟁할 것을 결심하였고 1907년 정미7조약이 늑결된 후 구 한국군마저 해산되자 그는 공주 당암의 동지 권정남과 의병 100여명을 모집하고 전의 소정역을 습격하여 일본군과 첫싸움읓ㄹ 벌였다. 그후 직산 경무소, 은진, 정산 등의 일본 경찰 주재소를 습격하였고, 1908년에는 당진, 청양, 비인, 한산, 임천, 면천, 신창, 아산, 평택 등지의 19개 군을 돌면서 일본군에 큰 타격을 주었으며 구속된 수백인의 의 지사를 구출하기도 하였다. 1911년 6월 16일 공주군의 당면 태산리에서 벌어졌던 치열한 전투에서 임대수는 일본군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신 애국지사이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을 높이 평가하여 1980년 8월에 건국포장을 1990년 12월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으며 남면 종촌리에 손자 임정묵이 살고 있다. 1999. 8. 15 글 지은이 : 강주현 글쓴이 : 김재산 자료제공 : 광복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