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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家를 위하여 난적을 토벌함은 民族의 큰 의리이다. 예로부터 忠義에 울분한 선비가 어느 때 없을까만은 사세의 大小와 緩急에 따라 操身함이 혹 같기도 하고 혹은 다르기도 하나 그 수립한 의리만은 한가지다. 아! 지난 庚戌년 國恥는 실상 우리나라 千古에 없는 大變이다. 三千里강토가 다 왜놈의 손에 들어가고 五百年 예의가 졸지에 오랑캐와 짐승의 영역으로 화했으니 臣民된 자 창자에 가득찬 의혈이 各處에서 벌떼처럼 일어나 나라의 원수를 갚으려다가 몸을 망치고 집안이 파산된 자를 어찌 다 세일 수 있겠는가? 오직 우리 연기군내에 士人인 金公 奎悅의 字는 元習이니 淸風人이라. 始祖는 고려조에 淸城府院君인 諱大猷요 中宗때에 공신작을 받은 諱友曾의 十三代孫이며 虞候인 諱 鍾義는 古祖이고 廣淵은 曾祖이고 東乙은 祖父이고 蘭性은 부친이요 全州李氏는 모친이다. 公이 高宗 丁亥(1887) 9월 5일에 출생하니 기골이 장대하고 천성이 강직하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글 읽기를 좋아하더니 눈앞에 시변이 망극함을 보고 의분을 참지 못해서 동지 오백여인을 규합하여 봉화를 올리고 만세를 首唱하다가 드디어 적의 총대에 심하게 맞아 유혈이 낭자하고 숨이 끊어질 지경이라 賊이 버리고 가다. 前日에 族姪인 鎭漢이 독립운동으로 滿洲에 체류하다가 군자금 조달차로 고향에 돌아오니 田畓萬餘坪을 매각하여 수용케하고 다음해 구수인 南총독이 충청도 시찰사로 조치원역을 경유한다는 정보를 듣고 때를 맞추어 칼을 품고 죽이려하다가 경비가 삼엄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로부터 절치부심하여 두 아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