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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범학교 비밀결사를 주도했던 효암 유흥수선생은 1939년 대구사범 9기생으로 재학 중 권쾌복(權快福), 배학보(裵鶴甫), 최영백(崔榮百) 등과 비밀결사 백의단(白衣團)을 조직했으며, 1940년 1월 박효준(朴孝濬), 이태길(李泰吉) 등과 민족의식과 항일정신을 고취하는 '반딧불' 을 제작 배포하였다. 1941년 2월에는 교내활동 뿐만 아니라 타교생 및 사회인까지 조직을 확대하여 다혁당을 결성했다. 유흥수는 다혁당 활동 중 1941년 7월 '반딧불.이 일제 경찰에 발각되면서 피체되었다. 그는 1943년 11월 대전지방법원에서 5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광복을 맞았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