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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보성(普成)전문학교 강사로 근무하였으며, 1912년에는 경성신문사 이사 및 조선경제회 이사를 역임하였다고 한다. 1919년 3·1독립운동에 참여하고, 동년 4월에 상해(上海)로 망명하여 조국광복운동에 참여하였다. 동년 5월에는 제4회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구급의연금 모집위원으로 선출되어 신 정(申檉)·오익표(吳翼杓) 등과 함께 충청도대표로 군자금모집에 전념하였다. 이에 그는 다시 국내에 파견되어 서정섭(徐廷燮)과 함께 충청도 지방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 중 일경에 체포되었으며, 1921년 2월 2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