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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덕을 지녀 대대로 유행을 닦아오던 이씨가문으로 들어와 부경부직의 노력을 기우리며 양친봉양에 정성을 다하여 원근인사들의 많은 칭송을 받았다. 그러던중 왜정 계해춘에 부군은 왜한의 강제동원에 끌려 진안 상전후사의 도로개설작업자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중 돌연 왜한이 양민들에게 민족적인 치욕심을 불러이르키는 모욕적인 발언을 하며 행패를 부렸다. 평소 의분심이 강했든 부군은 이러한 광경을 보고 참다못하여 격분한 끝에 대갈 일침을 가하였다. 이에 흥분한 왜인이 총을 발사하여 부군은 현장에서 절명하는 비운을 맞았다. 에 소식에 접한 부인께서는 복수코자 칼을 품고 현장에 이르러 왜한을 찔러 살해하여 수를 갚고 부군의 뒤를 따르려하였으나 유복태아가 있었으며 또 현장에서 체포되었기때문에 하종치 못하였다. 전주감옥에서 1922년 5월 20일 3녀 점례를 옥중출산하고 대구감옥으로 이감되었는바 때는 이미 왜놈들의 침략을 받아 국난의 위기에 봉착하고 있었다. 이제 부근은 왜놈의 손에 돌아가시고 나또한 이런 신세가 되어 철천지한을 풀길이 없으니 더 이상 살뜻이 어디있겠는가라고 하면 7일간 단식을 결행하여 자결의 길을 택하였으니 때눈 갑자 3월 28일 새벽 5시였다. 오호라 열부안씨의 정렬은 늠름하기가 찬서리를 넘보는 황국과 같고 곧고곧기가 백설위에 더욱 푸른 송죽과 같노니. 그 꽃다운 이름은 천추에 빛날것을 의심치 않으며 열부안씨의 사생취의의 거룩한 얼을 기리고저 여기 이적은 정석에 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