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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는 반만년의 역사와 그 전통에서 피어난 찬란한 문화와 그리고 비단실로 수놓은 듯 아름다운 국토를 지니고 있다. 이 풍요로운 강토의 남쪽 아늑한 복지에 자리한 이곳 雙柏面(쌍백면)은 나라 안에서도 산수가 수려하고 충의를 숭상하는 사람들이 대대로 살아온 고을이다. 一九一九년(1919년) 己未(기미) 三一(3.1)독립운동의 횃불이 올려졌을때 어찌 가만히 팔짱끼고 있었겠는가. 온 고을 사람들이 성난 호랑이처럼 일어섰다. 서울에서 독립선언서가 내려오자 몇몇 애국지사가 은밀히 고을안에 알려서 첫번째 거사일로 정한 三월 十八일(3월 18일)이 三嘉(삼가)장날이었다. 그날이 되자 수백명의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품속에 숨겨온 태극기를 일제히 높이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목이 터져라 외치면서 거리를 누비고 일본경찰과 맞섰다. 두번째 二十三일(23일)의 시위운동은 더욱 격렬하고 처절하였으니 栢山 上栢面(백산 상백면)사무소 일대에 무려 四(4)천명이 모여 만세시위를 벌였고 의분을 참지 못한 나머지 면사무소에 불을 질러 일본제국주의 침략문서들을 불살라버렸다. 이어 삼가시장으로 행진하면서 전신주들을 넘어뜨려 통신을 차단하고 천지를 진동하는 우람한 함성으로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전후 두번의 시위에서 잔학무도한 일본 경찰은 맨주먹인 시위군중을 향해 마구 총을 쏘고 칼을 휘둘러 수많은 사상자를 내게 했으며 수십명의 애국지사가 검거되어 저들의 감옥에서 뼈를 깎고 살을 에이는 괴로움을 당했다. 금년은 그로부터 꼭 六十一년(61년)째 회갑이 된다. 그날의 피맺힌 함성을 되새기고 이 고장 선열들의 위대한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기 위해 삼가 돌을 깎아 면민의 이름으로 이 돌을 세운다. 사학계의 태두인 李瑄根(이선근) 박사는 이 장렬한 독립운동을 고증하고 덧붙여 명하기를 己未三(기미3)월 이른봄에 만세함성 하늘찔러 雙柏(쌍백)고을 애국지사 민족정기 드높였네 거룩하다 독립정신 송이송이 꽃이되어 자자손손 마음 속에 고즈너기 살아나리 一九七九년(1979년) 시월 상달 崔南伯(최남백) 짓고 草溪(초계) 鄭道準(정도준) 쓰다 鄭榮燮(정영섭) 獻石(헌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