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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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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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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린계원 숭모비 유린계는 오당 처사 조공을 위한 계로 공자의 德不孤必有隣(덕불고필유린)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덕이 있는 사람은 마음을 같이 하는 이웃이 있어 외롭지 않으니 이것이 바로 덕이다. 세상을 같은 마음으로 어울리고 서로 따르며 함께 사는 것이 '유린'이다. 공은 최면암 송연재 두 선생의 고족제자로 뜻이 크고 기개가 있으며 의지가 굳고 높다. 연재 선생 순절시에서 복수를 하지 않으면 서책을 묻어야 한다고 말하였고, 면암 선생이 의병을 일으켜 대마도에 갇혀 있을때 갇힌 분들의 지조와 절개를 되찾고자 대마도로 선생을 찾아뵙고 왔다. 울릉도에 구금되었어도 이 뜻은 바꿀 수 없는 의지라 의연히 지켰다. 고종황제 인산 시 상소하고, 파리장서에 서명하였다. 우리나라의 광복을 위한 지조와 의사가 없지 아니하였지만 공은 드러내지 않았다. 장차 천지와 더불어 세상을 다스리는 도리와 법도가 바로 서게 되면 능히 이웃을 알게 하기 위하여 뜻을 함께하는 사문후학 문도들이 이 계를 세우고자 성안에 동참하여 유린계가 세워졌다고 병자년 춘 정월 팔일 동계생 정재 남정호 선생이 유린계 설을 남겼다. 1970년 유린계의 옛 계원들과 그 후손 및 문도 등이 뜻을 모아 재건이 존의되어 화산 권용현 선생은 공의 덕성과 신의를 흠모하는 이가 많으니 이 계는 更長(갱장)하여야 하고 유린자는 외롭지 않다면서 유린계 서문을 계축년 계동에 천하여 공을 사모하는 많은 사람이 동참하여 다시 계를 세웠고 1974년 공의 업적을 기릴 기념사업회를 발족하여 기념비건립을 최우선사업으로 추진하여 춘추대의와 존양으로 대변되는 공의 학문과 사상을 현창하고 충의의 표상인 공의 정신을 오늘에 구현하고자 앞장섰던 유린계원의 숭고한 정신을 흠모하여 그 정성을 비에 새겨 후세에 그 본을 전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