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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제 31년(1894) 왜병이 우리 주권을 무시하고 우리 국토에 올라 천인공노할 포학을 마구하여 왔으되 우리 정부는 황제나 국민의 의사에 어긋난 꼭두각시로 되었다. 국민은 끓어올랐다. 왕산 허위 선생은 떨쳐일어나 잃어진 주권을 돌릴려고 경상도 김산에서 의를 들어 괴뢰관군의 박격에 굽히지 않고 충청도 진천에 이르자 해산의 황명이 내렸다. 이때 적세는 일시 물러서고 적에 붙인 정부도 무너졌으매 그는 완전 복수설치를 못한 한을 머금은채 명에 좆아 돌아섰다. 그 뒤 황제는 선생의 재략을 듣고 불러올렸으나 그가 의정부참찬.비서원승 등 요직에 오를 그때는 이미 늦어 왜병이 또 들어와 러시아병을 쳐넘긴 광무8년(1904).9년의 사이라 선생은 그럼에도 마음을 떨어뜨리지 않고 안으로 국정을 바로잡고 밖으로 외모를 막아낼 길들을 갖추 아뢰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나라의 망함을 깨우치는 눈물의 상소와 왜병의 불법을 외치는 피끓는 격문으로 도리어 붙잡혀 갇히게 되었다. 나랏일의 이미 글렀음을 깨달은 그는 삼도봉 밑에 들어가 삼남의 지사들과 통하여 장래에 대비하였다. 그의 최후 결심은 이에서 더욱 굳어졌다. 과연 적은 병력으로 정부를 눌르고 역적들을 조종하여 우리 황제의 허락도 없이 조약을 맺았다고 주권을 완전박탈하였다. 선생을 일어나게 한 황제의 밀조가 내렸다. 눈물로 황명을 받아 깨어진 금구를 다시 맞추고 기울어진 대하를 다시 고울려고 경기로 나아가 거듭 깃발을 올리매 사방의 의사 모여들었다. 무기도 탄약도 식량도 없고 훈련도 안된 그들에게 적은 너무 억세었다. 선생은 각지의 의장들을 강원도 의장 이인영의 진지 원주에 모아 부서를 새로 간추려 이공을 총대장에 선생을 군사장에 그리고 8도의 대장을 내세워 기일을 정하여 서울로 들어가 적의 통감부를 뒤엎어 일거에 주권을 회복할 책략을 세워 각국 공관에 국제법상 교전단체임을 알리웠다. 그 어찌 뜻하였으랴. 각도 의장들은 기일에 닫지 못하고 이공은 친상을 만나 뒷일을 선생에게 부탁하고 가버려 약정한 그 날 선두에서 지휘하는 그의 친병만이 동대문을 향하여 진격하였다. 천문이랄가 반역자의 밀고와 적의 강습으로